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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일본의 지역, 국가, 국제 정체성 사이의 오키나와 가라테

Authors:
유네스코아태무형유 산센터·유네스 코국제무예센터 엮음
세계의
전통무예
만나다
인류무형문화유산
유네스코아태무형유산센터·유네스코국제무예센터 엮음
세계의
전통무예를
만나다
인류무형문화유산
서문 004
01 2019 열린학교, 카포에이라의 무형유 산 가치 전승 013
02 베트남 전통 박호의 도전 027
03 현대 일본 지역, 국가, 국제 정체성 이의 오키와 가라 042
04 하코쿠 유검도 연맹으 로 본 브라질의 유도 059
05 중앙 시아 전통 레슬링 074
06 인도 케랄 의 전통 , 칼라 야트 087
07 레온 사람, 레온 품성이 레온 레슬링으 로 나타 102
08 고대 상인 문화가 만든 중국 산시성의 심의권과 형의권 120
09 문화 정체성을 지켜가는 크프나르 오일 레슬 133
10 무예, 만남과 화해 적 가치 148
11 스페인 시대 문화 로 통하 관문, 멕시코 무예 실람 165
12 미얀 타잉 183
13 닐라이칼 실람밤 202
14 올드 폴란드 사브 펜싱 218
15 전통 예에 나타 신체문화 보존 237
16 국 마을의 종교 의례와 무예 수련 254
17 싱가의 말레이 무형유 펜칵실 268
18 태권도에 평화 연구 패러다임을 283
19 토착예: 문화, 연속, 투쟁 300
차례
세계의 전통무예를 만나다
042
일본의
, , 정체성 사이
오키나와 가라테
에두아르도 곤잘레즈 푸엔테Eduardo Gonzalez de la Fuente
스페인 바르셀로나자치대학교
안드레아스 니에하우스Andreas Niehaus
벨기에 겐트대학교
03
03
_ 현대 일본의 지역, 국가, 국제 정체성 사이의 오키나와 가라 043
,
일반적으로 가라테는 오키나와섬에서 발달한 일본 전통무예로 여겨진
다. 오키나와1879년까지 독립국가 류큐 왕국(1429~1879)으로, 일본,
중국, 한국 및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 외교, 문화, 경제적 관계를 맺고 이
들 국가와 중계 무역으로 번성했다. ‘손(tī/te)’ 또는 ‘중국(tōdī/tōde)’으
로 알려진 가라테는 오키나와의 토착 격투 체계와 중국 및 아시아 여러
지역의 술, 세계관, 민속 정신이 오키나와 사회에 뿌리를 내리면서 만
들어졌다. 현재의 가라테는 무기 없이 주먹과 발차기를 사용하는 무예
이다. 오키나와현에서는 가라테의 역사, 사회, 문화적 중요성을 고려하
1990년대부터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 등재를 위해 적
적으로 노력해왔다. 가라테는 2021년에 도쿄올림픽 전시 종목으로
데뷔할 예정이다. 세계가라테연맹
WKF, World Karate Federation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약 1 명이 가라를 수련한다. 가라는 스포 종목으
서 면모를 훌쩍 뛰어넘어 현대와 전통을 아우르는 문화 아이콘으로, 세
스포문화의 일부가 되어 일본의 문화 수출품으로 자리매김했다.
1879년, 오키나와는 일본에 병합되어 오키나와현이 되었다. 그리고 쇼
토칸 가라테의 창시자인 후나코시 기(1868~1957)20세기 초에 오키
세계의 전통 무예를 만나다
044
나와 가라테를 일본 본토에 소개했다.
후나코시는 1916교토 무덕전
殿에서 가라테를 선보이고 1922년 도
쿄에서 열린 최초의 체육 시연회에 초
청받아 라테를 연행했다. 이듬해
후나코시는 일본 본토의 학교와
등에서 가라테를 대중화하는
성공한다(Bittmann, 1999). 그러나
본에 소개된 가라테다른 현대화
된 일본 스포츠 무예, 특히 유도와 검도의 영향을 받아 스포츠화 및 군
사화 과정을 거친다(Nakatani ., 2008). 가라테 무예와 철학20
일본 본토의 정치, 문화, 이념의 맞추어 변형되었기 때문에
과정을 ‘일본화’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1920년대 후반과 1930년대
일본의 무예, 스포츠, 체육교육은 전국적으로 획일
Gleichschaltung 정책
내에서 체계적으로 이루어졌으며, 충성스럽고 애국적인 시민을 양성하
고, 불굴의 투지를 가진 병역을 준비시키는 도구로 활용되었다(Abe .,
1992; Bennett, 2013).
패턴 운동인 ‘가타’에 중점을 두었던 가라테는 점점 더 스파링 경기인
‘구미테’에 점을 두게 되었다. 순위 및 점수 체계와 수련 전 명상 과정
생겨나고 오키나와에서 일상복을 입고 수련하던 것과는 달리 흰색의
훈련복이 도입되는 가라테는 의례화되고 공식화되었다. 수련 전에
장의 규칙을 읽는 것이 보편화되었고 개인 수련은 형식 및 명령 체계를
갖춘 단체 수련으로 바뀌었다. 기술이 표준화되고 학교와 대학의 체육
교육 한 스 들기 위해 수련생에 재적 해가 될지
도 모르는 기술은 사라졌다. 마침내 가라테는 1901년에 오키나와의 학
교 교과정에 도입되었다.
1920년대 후반에 후나코시 기친은 가라테의 표기를 ‘중국 손’이라는
1937년 슈리성에서 슈리시 초등학교 남녀학생들의 가라테 시연
©공수도대관(空手道大 ), 1938. 나카소네 겐와
03
_ 현대 일본의 지역, 국가, 국제 정체성 사이의 오키나와 가라 045
의미의 당수
唐手에서 ‘빈손’이라는 의미의 공
空手로 변경하고 ‘도
’를
추가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공수라는 용어는 초모하나 시로1905
자신의 가라테 대련을 언급하며 최초로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렇게 재창조된 가라테는 현대 일본 무예 ‘전통’에 좀 더 가까워졌다. 변
경된 명칭은 가라테의 주요 기술적 특징을 ‘무기를 사용하지 않는 무예’
로 묘사하고, 불교 철학 및 ‘도’의되는 다른 일본 예술 형식과 가라
테 사이에 연결 고리를 확립했다. 그러나 중국(당)이라는 글자를 변경한
것은, 가라테의 대중화 방해 오키나와와 일본 본토 젊은이들의
중국 정서에 대한 반응이기도 했으며 정치적, 이념적 시대정신을 고려한
것이었다(『류큐 신보』, 1936; Bittmann, 2017). 일본의 1895이후 모든
술을 단일 조직으로 통합시킨 대일본무덕회
大日本武 에서 1933년에 가
라테를 일본 무술로 인정했다(Gainty, 2013). 가라테의 일본화가 본토
서 창시된 스타(예: 쇼토칸) 에만 국한된 건 아니지실제로는 역효과로
오키나와 스타일의 변화가져왔다. 또한, 1936(제2차 중일전쟁 발발
전년도)는 가라테도(공수도)라는 용어의 사용이 결정되었다. 가라테의
일본화는 오키나와 문화를 단일 국가 일본의 문화적 틀에 동화시키는
정치적 목적 또한 성시켰다.
20세기에 가라테가 서양으로 전파되 가라 계화
다. 첫 시작은 하와이와 남미로 이주한 일본인이었으며 제2세계대
전 이후에는 주로 미군이 전파의 주역이었다. 전쟁 이전에는 야부 켄츠
(1866~1937), 미야기 초준(1888~1953), 키얀 초토쿠(1870~1945) 같은 유
명한 오키나와 가라테 사범들이 해외로 나가 가라테를 선보이고 가르
쳤다. 그러나 가라테가 세계화를 통해 다른 나라에 자리를 잡은 것은
세계의 전통 무예를 만나다
046
2세계대전 이후였다. 한국에서는 1940대 일본 대학에서 유학한
사람들을 통해 전파되기 시작했. 많은 학원에서 가라테를국식
로 표기하여 당수도(중국/손/길) 또는 공수도(빈/손/길) 했던 것으로
이며, 이것1959년에 생겨난 태권도(발/주먹/길)전신이 되었다. 한
국의 주요 가라테 단체들은 한국형 가라테에 일본식 이름이 아닌 한국
식 표기를 사용하기로 결정하고 ‘한국태권도협회’를 결성했다. 대만에
서는 1960년대 중반에 가라테가 상당한 인기를 얻어 1973년에대만
도연맹(Orr & Amae, 2016)이 설립되었다. 1960년대에는 호주
서도 가라테가 공식적으로 자리를 잡았. 1950년대 후반에는 아프리
카와 중동으로도 퍼져나갔다. 유럽에서는 주로 앙리 쁠(1923~2014)
의 노력과 그의 ‘프랑스가라테클럽’(1955)을 통해 라테가 확산되었고,
1965년에 ‘유럽라테연맹’설립되었다. 아르헨티나, 브라질, 멕시코
등을 중심으로 북미 대륙에서도 1960년대에 가라테가 확산되기 시작
했다.
미국은 오키나와 일본에 주둔한 군인을 통해 가라테가 대중화되
다. 일본라테협회 동 창립 시야 히데(1928~2008)
해 동안 미군을 가르치다 1961캘리포니에 정착하여 일본 외 지역
에서 가라테를 홍보하는 주요 인물이 되었다(Benesch, 2020). 이처럼 미
국의 오키나와 점령 당시 미군과 오키나와 가라테 사범들의 직접적인
이 이루어지며 가라테가 전파되었다.
종전 후 일본에서는 “점령 당에 의해 무예 수련에 참가 이 대
금지되었다 (Bennett, 2013).” 예의 연행과 이념 및 철학이 파시스
트 이데올로기 확산과 일본 사회의 군사화에 기여하는 적극적 도구로
였기 때문이다. 1940년대 후반, 가라테를 포함한 무예 훈련이 재개되
었을 때, 무예는 군국주의적 과거를 버리고 스포츠로 재창조되었다. 이
러한 재창조는 가라테가 세계화될 수 있는 토를 마련했으며, 전쟁 후
에는 전쟁 이전 가라테의 모습을 수용하고 현대 격투스포츠의 흐름을
03
_ 현대 일본의 지역, 국가, 국제 정체성 사이의 오키나와 가라 047
따르며 더욱 발전했다.
가라테 같은 문화유이 세계화될 때 나타나는 한 가지 현상은 동질
화이다. 지역 또는 국가 차원에서는 문화적 관습의 정의 및 행과 관련
하여 소유권과 통제를 잃어가고, 국제적 차원에서는 연행, 철학, 등급,
체계에서 국제적 동질성을 만들어낸다. 오늘날에는 세계가라테연맹이
나 올림픽위원회
IOC 같은 조직이 전 세계적으로 가라테의 지식과 연
이 무엇인지를 정의한다. 동질화 과정의 또 다른 효과는 단순화와 배제
이다. 2016년 올림픽 집행위원회는 2020 도쿄올림픽 종목에 가라테를
포함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때 가라테는 세계가라테연맹 내에서 시행
는 가라테 스타일만을 지칭했다. 세계가라테연맹은 고주류, 시토류, 쇼
토칸, 와도류 4가지 스타일의 가타만 인정했다. 오늘날 일본과 오키나
등록된 가라테 스타일은 20개가 넘는다.
역설적으로 세계화 과정은 동질화를 가져오는 동시에 분열과 지
로 이어진(Bowman, 2010). 세계화는 소유, 소속, 정체성에 대한 논쟁
을 불러일으키며, 문화적 변용, 전유 및 세계화된 문화 관습은 종종 국
제, 국가, 지방, 지역 차원의 경제적 이해관계와 얽히게 된다. 가라테가
초기 형태에서 벗어나 국제 스포로 발전하며 세계화, 스포츠화, 상품
화 되어갔다. 한편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오키나와에서는 영적이고 ‘진
짜’ 경험에 대한 현대의 갈망과 탐색에 부응하는 가라테로 회귀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이러한 움직임은 현대의 가라테보다 정통 가라테를
재구성하고, 발견하고, 경험하고 싶어 하는 향수와 본질적으로 관련이
있다.
국가와 지방 정부는 무예와 같은 문화 관습이 공동의 문화유산으로서
세계의 전통 무예를 만나다
048
국민을 단결시키고 국문화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를 세계에 전파
소프트 파워의 원천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오래전부터 깨달았다. 오키
나와 정부 원하기 위한 정책뿐만 아니라 오키나와 가라
무형유산의 독특한 사례로 유네스코에 등재하기 위한 정책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노력은 지역 가라테 공동체에서 시작되어 위로 전달되는
상향 움직임이기보다는, 국내는 물론 국제적으로 오키나와현의 독특
한 문화를 장려하기 위한 하향식 정치 행위이다. 오키나와 가라테와 관
련한 국가 차원의 복합 계획은 일본의 경제산업성과 내각 정책에 의해
일본 정부 내에서 행정적으로 조직되었다. 가라테는 일본 지적 재산과
관련한 ‘쿨 재팬
Cool Japan브랜드 전략의 일부이
가라테의 경제적 잠재력을 깨달은 일본 정부와 오키나와현은 지역
기업체후원을 받아 일본 시민과 외국 가라테 광객이 오키나와
를 매력적‘가라테의 성지’로 인식할 수 있도록 홍보한다. 2016년 자
료에 따르면, 총 1,188명의 외국(미국인 38.2%, 호주인 21.1%, 프랑스
17.1%)이 오키나와를 방문해 라테를 체험했다. 오키나와 가라테 도
31.5%는 일본 외 지역에 지점을 두고 있으며 외국인 회원의 비율은
37.4%이다(오키나와현, 2019). 가라테는 광범위한 관광정책으로 통합되
어, 이 오키나와 무형유산이 하와이 같은 아열대 섬의 해변 휴양지의 이
미지와 연결되기 (Figal, 2008).
가라테를 무형유산으로 인정받기 위한 첫걸음으로 일본
1997년에 국산법에 따라 가라테와 고
무술을 무형문화재로 지
했다. 그해, 마쓰바야시류의 나가미네 쇼신(1907~1997), 고주류의 야기
메이토쿠(1912~2003), 우에치류의 이토카즈 세이키(1915~2006), 총 3
의 가라테 사범을 ‘가라테와 고무술 분야 무형문화재’로 최초 지정했다.
2000년에는 가라테 역사와 오키나와 유산으로서의 가라테 재건과 밀
접한 관련이 있는 슈리성, 시키나엔 정원 등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고, 6명의 사범이 형문재로 추가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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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현대 일본의 지역, 국가, 국제 정체성 사이의 오키나와 가라 049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 가라테를 식적으로 권위가지고 보존, 홍
보, 전파할 목적으로 여러 조직을 설립해 중앙집중형 인프라를 구축했
다. 오키나와 출신의 유명한 가라테 사범 6명이 가라테도라는 용어를
채택하겠다고 힌 날짜가 19351025인 것에 착안하여 2005
1025일을 ‘가라테의 날’로 지정했다 (『류큐 신보』, 1936). ‘가테의 날
은 가라테 역사와 정체성을 분명히 여 대중의 심을 끌고, 관광객을
유치하는 데도 기여할 것으기대되었다.
2014년 ‘가라테의 날’오키나와 정부는 가라테를 유네스코 무형유
산으로 등재신청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목표를 위해 2016년에두 개
기관을 추가로 설치했다. 오키나와현 지정 무형문화재 ‘오키나와 가
라테와 고무술’ 보존 학회와 지역 가라테 네트워크 정책을 기획하는 가
라테 진흥과가 그것이다. 가라테 진흥과에는 “오키나와 가라테의
네스코 무형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는 임무가 주어졌다(『류큐 신보』,
‘가라테의 날을 위한 100개의 가타’, 오키나와 도미구스쿠시 추라산 해변에서 2016년 가라테의 날을
기념하여 열린 개별 연례행사 ©크리스 윌슨
세계의 전통 무예를 만나다
050
2016). 가라테 등재신청을 위한 가장 확실한 상징은 2017년 문을 연 ‘
키나와 가라테회관’으로, 박물관과 오키나와 가라테정보센터
OKIC도 통
합될 예정이었다. 전 세계 라테 공동체의 관심을 끌고 ‘순례지’ 역할도
할 것으로 기대되었다. ‘오키나와 가라테회관’은 그 역할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오키나와 가라테를 고유한 문화로 보존, 계승, 발전시키는 동
시에 국내외 사람들에게 오키나와가 가라테의 발상지임을 린다.
누구나 가라테의 본질을 배울 수 있는 장소이다.” 동시에 이 회관은 “가
라테 코 무형산 등재”를 추진해야 한다(『류큐 신보』, 2017).
오키나와현의 지역 가라테 사범과 전통의요성을 강조한다.
또한, 오키나와 가라테 내에서 여러 학파와 스타일 목표를 명확히
고 단일화하려고 노력한다. 현재 오키나와 정부는 가라테의 3지 주류
전통인 쇼린류, 고주류, 우에치류와 11개의 비주류 전통 및 고무술 스
일을 인정한다. 여기에서 105의 학파와 분파가 생겨났으며 오키나와
에만 총 350에서 400개의 도장이 존재한다(OKIC, 2020). 수많은 가
테 스타일과 학파는 서로 다른 규칙, 기술, 가타를 가지고 있으며, 정당
성과 정통성 측면에서 일본 본토 스타일 및
학파들과 경쟁한다. 그러나 성공적으로 유
네스코 등재신청을 하려면 오키나와와
가라테 이해관계자들이 ‘전통’ 가라
가 무엇인지 정의하고 일본 정부의 무형유
산 국가목록 등재에 합의해야 한다. 가라
의 지역적 정의와 이해관계 및 규범은 국가
원의 정의, 이해관계, 규범과 차이가 있
어 상충한다. 라테는 국가 원에서 일본
전통의 일부이며, 오키나와는 문화적 역사
적으로 일본 본토와 동일하다. 그러나 오키
나와현의 발의안에서는 오키나와와 일본
2016년 10월 23일 나하의 고쿠사이 거리에서 3,973
명이 가라테 가타를 시연하여 기네스 세계기록을 세움.
이 기록은 아직 깨지지 않았다 ©크리스 윌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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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현대 일본의 지역, 국가, 국제 정체성 사이의 오키나와 가라 051
본토의 가라테를 분명히 구분한다. 나카하라 노부유키 전 일본가라테
협회 회장은 2017년 ‘키나와 전통 가라테의 유네스코 등재를 위한 회
의’에서, 오키나와 가라테는 오키나와의 특정 문화적, 역사적 맥락에서
발달했고 일본 전통 가라테는 무사도 전통 내에서 발달했다고 말했다
(OKIC, 2017). 일본 가라테를 무사도 이념에 뿌리를 둔 것으로 접근하는
방식에는, 가라테를 연행만이 아닌 이념적 차원에서 확고하게 일본의
예 전통으 바라보는 가 차원의 경향성이 반영되어 있다.
회의에서 일본가라테협회의 전 임원이자 1999년에서 2009년까
지 유네스코 사총장을 지낸 마츠우라 코이치로는 성공적으로 유네
스코에 등재하려면 오키나와 가라테 이해관계자와 일본 정부 및 무형
유산 국가 전문가들이 협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츠우라는 2003
무형유산협약이 자신의 임기에 조성되고 승인되었음을 상기하며
본이 무형유산 관련 유네스코 담론에 큰 영향을 미친 증거라고 말했다
(Akagawa, 2016). 마츠우 라테 여 다음과 같은 것들이 시
급하다고 표명했다. 첫째, 전통적인 오키나와 가라테가 스포츠 가라테
가라테회관 부지에 보존된 오키나와 고유의 카메오-바카(거북이등) 무덤. 가족과 조상에 대한 존경의
표시이며 오키나와에 널리 퍼져 있는 문화 ©에두아르도 곤잘레즈 드 라 푸엔테
세계의 전통 무예를 만나다
052
및 국제 가라테의 시행 방식과 어떻
게 다른지 보여주어야 한다. 둘째, 오
키나와가 가라테의 발상지임을
주는 검증 가 능한 역사적 증거를 구
축해 다.
오키나와 가라테와 일본 본토 가
라테를 통합하고, 오키나와가 가라
테의 발생지라는 사실을 공적 영역
에서 이해시키는 일은 성공적인 유
네스코 무형유산 등재신청에 있어 중요한 일이다. 키나와현이 작한
2018년 시각 자료에 따르면, 오키나와 주민96%는 ‘오키나와가 가라
테의 발상지이다’라고 인식하는 반면, 일본 본토의 경우 그렇다고 인
하는 시민은 전체의 34%에 그쳤다(오키나와현, 2018). 그러재팬타임
즈』의 2018511일자 기사에 따르면 오키나와현 사람들이 오키나
와가 가라테의 발상지라는 사실은 분명히 인식하는 반면, 가라테의 보
과 홍보의 필요성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유네스코 협약에서는, 무형유산이 되려면 공동체와 집단이 해당 문
화유을 “자신들의 문화산의 일부”로 인식해야 하고 이들에게 “정
체성과 연속성을 부여”하는 역할해야 한다고 명시한다(UNESCO,
2018). 따라서 먼저 오키나와인들의 지지를 확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
다. 현재 유네스코에 무예 관련 범주가 따로 없기 때문에 ‘사회적 관습,
의례 및 축제 행사’를 목표로 가라테의 유네스코 등재 계획을 추진하
상황에서는 특히 그렇다. 이에 따라 2019년 설립된 가라테 전문가 위원
회는 ‘의례’ 주요 키워드로 하고, ‘평화의 정신, 키나와 가라테 의례
를 유네스코의 링에 묶다’라는 슬로건을 발표했다(『류큐 신보』, 2019). 이
‘가라테 의례’는 오키나와 문화권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으면서 표현
과 전승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가라테를 오키나와 전통
오키나와 거리축제에서 공연하는 가라테 어린이 수련생 ©미겔 앙
헬 헤갈라도 에스포지토
03
_ 현대 일본의 지역, 국가, 국제 정체성 사이의 오키나와 가라 053
의례와 축제에 있어 불가분의 요소로 구체화한다면 무형유산의 범위가
넓어질 수 있다. 줄다리기, 보트 경주, 사자춤 같은 민속 축제와 묘소 및
기념비 등의 영적 공간에서 자주 공연되는 가라테는 특정 하위 분야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오키나와의 유물과 무형문를 활용 문화
이다.
하나의 원, 개의 전통, 하나의 국가 산이 되다
20세기 초에 나타난 가라테의 변형은 일반적으로 일본화 과정으로 해
석된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현대화의 관점에서도 설명되어야 한다.
라테는 스포츠화, 군사화, 표준화 과정을 거쳤으며, 이로 인해 가라테를
학교, 대학, 군대 등에서 대규모로 가르칠 수 있었다. 역으로 이러한 변
형이 오키나와 가라테의 수련 방법과 정의에 영향을 미쳤지만, 이 과정
은 중요하게 다루지 않을 때가 많다. 가타를 핵심으로 하는기방어 체
계인 ‘전통’ 가라테는 사라지고 일종의 의례 공연인 현대의 격투(구미테)
나하 줄다리기 대축제의 전통 가라테 시연 ©크리스 윌슨
세계의 전통 무예를 만나다
054
했다.
일본과 오키나와의 이중 문화재라는 측면으로 인해 라테를 둘러싼
논쟁에는 항상 긴장감이 존재한다. 유네스코 무형유산으로 공식 인정
을 받기 위한 과정에서 가라테의 역사적 뿌리, 파급력, 의미 등과 관련
하여 이러한 쟁이 재소환되고 있다. 공식적인 전략대로 일본을 ‘쿨’한
국가로 브랜드화하려면 일본은 오키나와 가라테 전통을 인정하고 지원
해야만 한다. 그 결과, 이러한 복잡한 시각 안에 하나의 기원(오키나와),
두 개의 ‘전통’(오키나와 가라테와 일본 가라테), 하나의가 유산 (가 테 전
체)이 존재하게 었다.
가라테가 유네스코에 성공적으등재되려면, 라테의 활성화와
오키나와 의례의 재설정, 즉 다른 오키나와 고유의 의례들과 가라테의
관련성을 강화하는 것이 유한 방법인 듯하다. 논의가 계속 진행 중이
지만 유네코 등재를 성공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합의에 따라 행동
하는 것’이다. 지난 10년 동안 가라테를 무형유산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무형문화재이자 오키나와 쇼린류 가라테 10단 유단자 세이키치 이하 사범의 ‘도카치(88세 생일을 기
념하는 오키나와의 장수 축하 행사)’를 기념하여 슈리성에서 유학생들의 가라테 시연 ©크리스 윌슨
03
_ 현대 일본의 지역, 국가, 국제 정체성 사이의 오키나와 가라 055
여러 제도적, 전승적, 담론적 실천이 있었다. 이러한 지역 활동은 오키
나와 가라테의 모 을 이미 게 바꾸어 놓았다. 오키나와 정부의 장기
적 비전이 지역 가라테 공동체와 향후 가라테에 대한 이해와 수련 방식
얼마나 바꾸어 놓을지는 좀 더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가라테는 그 자체로 문화적 다양성을 표현하고 시간, 지리, 정치의 경
계를 초월하는 서사가 담긴 유산이다. 오키나와 가라테는 여전히 과거
와 관련한 현대의 주장을 실어 나르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오키나와와
일본 관계에 대한 규범적 담론과 일치할 수도, 상충 도 있다. 그
럼에도 불구하고 유네스코 등재가 오키나와에 가져올 상징적 중요성으
로 인해 적어도 정부 차원에서는 유네스코 등재를 추진하려는 흐름이
만들어졌다. 문화 자원이 형유산으로 지정됨은 문화 다양성에 대한
지원과 이해를 확대하는 동시에 관광 관련 수익을 늘리는 요인이라
사실이 입증되었다. 세계화의 맥락에서 무형문화는 사회와 경제 영역에
서 눈에 보이는 결과 가져온다. 오키나와 일본 적, 사적 관
계자들은 가라테의 잠재력이 완전히 개발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잘 알
고 있다.
가라테는 오키나와의 지역 무형유산 활성화 과정의 일부인 동시에 일
본 본토의 국가 정책에 의해 진행된다. 이러한 하향식 관리에도 불구하
고 오키나와에 있어 가라테는 역사적 연속성, 정체성, 도덕가치, 자
기 인식, 다양성과 관련하여 광범위한동체 의식을 유지하고 전파하
는 귀중한 자산이다. 그러나 문화적으로 보존된 이러한 지식과 기술이
무예로서의 가라테를 통해서만 출되는 것은 아니다. 소수집단 문화의
일부로서 통합적 관점을 보여주고, 무형유산인 무예를 통해 다른 여러
지역과 대화 를 만어낸는 점에서 가라테가 더욱 중요할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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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무형문화유산 세계의 전통무예를 만나다
유네스코아태무형유산센터, 유네스코국제무예센터
발행일 2020년 12월 24일
펴낸이 금기형, 박창현
펴낸곳 유네스코아태무형유산센터
유네스코국제무예센터
책임편집 박성용, 류석열
기획·편 박규리, 장연석, 이강혁, Nanoï Lauwaert
주소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서학로 95 (우)55101
충청북도 충주시 옻갓길 73 (우)27438
제작 도서출판 학고재
ISBN 979-11-91300-01-7 93380
도서에 포함된 견해는 저자의 것으로 발행기관의 의견을 대표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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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해 청소년의 교육과 사회 참여를 증진시켜 건강한 문화, 통의 문화에 기여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센터는 무예 연구 및 지식 공유, 역량 강화, 선진국 - 개도국 협력, 무예 정보의 적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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